생활속의 검도

Kumdo in Life

Written by Jin K. Seong(Kyosa 7th Dan) 바로가기(성진규관장 ‘생활속의 검도)’

1) 집중력 (concentration) – 검도는 찰나의 예술이란 말이 있다. 검도의 기술이 성공하는데 0.3초가걸린다고 하니 정말 찰나에 승부가 갈리기 때문에 잠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다. 오랜 수련을 통해점차 고도의 집중력이 향상 되는데 상대를 예민하게 관찰 하게 되고 집중하는 시간 또한 길어진다.많은 경우에 검도의 유익함을 알면서도 중간에 포기를 하게 된다. 그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할일이많아져서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학년이 올라갈 수록, 특히 대학 진학이 가까워 질수록, 시간의부족을 호소하며 자신이 좋아하던 어떤 한가지를 줄이거나 잠을 덜 자는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고,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에 나가면 점점 더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을 할 것이다. 결국 인생 전체가 시간에 쫒기는 삶이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 이상의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주어진 시간을 얼마나 집중하여 사용할 수 있는가, 하루 24시간을 얼마나 효용을 극대화 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검도의 반복된 훈련을 통해 기능이 향상되듯이시간을 집중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 역시 훈련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좋아하는 한가지를 줄이지 말고 시간을 집중해 사용하는 방법을 훈련하는 것이 더 큰 투자이다.2) 판단력 Judgement– 검도의 공격이 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나 상대의 공격을 받는 위기의 상황에서 순간적인 판단력이 절대 필요하다.  흔히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많이 생각하고 신중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검도를 하다보면 생각이 많아서 좋은 기회를 놓치고위기에 적절한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판단력은 시간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지, 물러서야 할 지, 수많은 선택의 상황이 있고 그 순간의 선택이 정반대의 결과를초래하기도 한다. 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경험하게 되지만 그런 경험들이 모여 정확한 판단력을키워 주는 것이다. 결국 반복되는 훈련과 경험에 의해 얼마든지 향상 될 수 있는 문제이다.3) 인내심 Endurance– 꿈을 꾸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꿈을 하루 아침에 이룰 수 있다면 그것은 꿈이 아닐 것이다. 검도 수련은 재미 있는 날 만 하고, 하고 싶은 상대 하고만 연습 하고, 몸 상태나 마음 상태가 편하고 좋은 날 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자신이나 주위 여건이 그럼에도 불구 하고,인내 하고 꾸준함을 지킴으로 해서, 마치 근육을 단련 하 듯 내 마음의 인내심을 키워 나가는 것이다. 그러한 인내심이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키우고 꿈을 이루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4) 자신감 –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이 있다. 사범님과의 대련은 바로 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고작 몇 년 수련한 사람이 몇 십년을 수련한 사범님께 계속해서 공격을 요구 받는다. 뒤로 물러서도 혼이 나고 앞으로 나아가자니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뿐 더러 두려움과 공포심마저 느끼게 된다. 그러나 계속해서 공격을 해야 한다.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면 평생을 해도 달라질 바가 없겠으나 사람은 다르다. 그러한 시도가 반복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듯한 시작이 면역이 생기고 용기가 생기면서 언젠가는 해 볼 만 한 것으로 생각이 바뀌게된다.
초보자가 처음 시합에 나가 보잘 것 없는 결과에 기가 죽을 수도 있고 얼떨결에 이기고 자신감을 갖기도 하지만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면 그것은 자신감이 아니었음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자신감은 순간 순간 바뀌는 그런 감정이 아니라 오랜 시간 자신이 준비해 것,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터득한 것들 이런 것들이 모여서 나를 받쳐주어야 하는 것이다.5) 용기 – 진정한 용기는 쉬운 것 보다는 어려운 상황에서, 남들이 다 할 수 있는 것 보다는 남들이 하기 힘든 상황에서, 순간적인 것 보다는 지속적인 것, 약자에게 보다는 강자에게 행할 때 값어치가 있는 것이다. 말보다는 행동 그리고 그 행동에 따르는 책임, 흔들리고 망설이고 두렵고 무섭고인간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 나약함에 반하는 것이다. 선천적으로 그런 용기를 타고 나기를 바라는 것은 복권에 당첨되기를 바라는 것과 다름 없다. 결국 반복되는 수련을 통해 조금씩 나를 담금질하며 만들어 가는 것이다.6) 유연함 – 유연하다는 말은 부드럽다는 말이다. 여유가 있다는 것이고 부러지지 않는 탄력이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나약함과는 다르고 허세와도 거리가 멀다. 여유와 부드러움을 갖기 위해서는 상대를 품에 앉을 도량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상대보다 더욱 강해야 가능한 것이다.결국 나자신을 강하게 담금질 하는 것은 더 많은 것을 품에 앉을 마음의 여유를 확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수련에 있어서 승부에 집착하지 말고, 불필요한 힘을 빼고, 크고 부드러운 동작을 취해야 한다. 잘못 생각하여 원칙을 피해가고 잔수를 부리며 가는 것이 융통성이 있고 유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원칙을 지키고 바른 길로 가는 것이 큰 마음을 찾는 것이고 마음의 여유를 갖는 길이다.7) 결단력 – 큰 일의 결정을 앞에 두면 누구나 결과에 대한 불투명성 때문에 고민을 하게 된다.자칫 많은 것을 잃을 수가 있고, 그것이 너무 귀하기 때문에 결정 내리기가 쉽지 않다. 검도에서는 그런 기로에 섰을 때, 마음을 비우고 모든 것을 걸라고 말한다. 사실 마음을 비우기가 말처럼 쉽지않지만, 또한 마음을 비우지 않고서는 실타레처럼 엉킨 일들을 풀어 나가기 또한 쉽지 않다. ‘필사즉생’ 죽음을 각오하면 반드시 살길이 생긴다. ‘내 오른 팔을 주고 상대의 맥을 끊는다.’ 이와 같은 말들을 검도인이라면 누구나 경험해 보았으리라 생각한다.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는 결정의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마음 비우기를 먼저 해야 한다.

8) 약속 – 사람과 사람의 관계엔 크고 작은 약속들이 있다. 흔히 작은 약속을 소홀히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 작은 약속들이 그 사람의 신뢰를 결정하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신뢰라는 것은 쌓기는 어려워도 잃기는 쉽고, 한번 떨어진 신뢰감은 좀처럼 다시 쌓기가 어려운 법이다. 약속 시간에 매일 늦는 사람이 있다. 그 날도 어김없이 늦게 나와서 무슨 이유를 대기 시작한다. 모두들 그 얘기를 들어주지만 그가 오기 전에 이미 모두 예견한 일을 확인 시켜 주고 있을 뿐이다. 늦은 이유를 들으면서 모두들 너와는 절대 큰 약속은 안할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약속은 작은 약속이 더 중요한 것이다. 검도 수련에 있어서도 중도에 포기 하지 않겠다는 약속 이전에 매일의 수련을 빠짐없이 지키는 작은 약속이 선행 되어야 하는 것이다.

9) 의지 – 어떤 한가지 일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포기 한다는 것은 목표에 대한 초심이 약해지는 것이다. 검도를 시작하여 유단자가 되고, 평생을 통한수련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수 많은 유혹과 이유들을 극복 해야 한다. 흔들림을 잡는 그 노력과 노하우가 쌓이면서 목표를 향한 꾸준함과 성실함이 생길 것이고, 산을 넘어 본 사람만이 다음에 오는더 큰 산을 넘을 의지와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지금 검도를 꾸준히 수련하는 것은 기능 이전에 바로 이 의지력을 키워주는 거름인 것이다.

10) 열정 – 무엇인가에 미치도록 몰두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열정이란 것이 정말로 무한한 에너지를 준다는 것을 알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검도에 입문을 하게 되지만 모두가 열정을 갖는 것은아니다. 열정을 갖고 열심히 하는 사람을 부러워 할 뿐이다. 검도가 나와 잘 맞아서 열정을 갖는 경우는 오히려 특별한 경우이다. 분명한 것은 소위 어떤 한 분야에 성공한 경우는 대부분 검도 역시열정적으로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한가지를 열정적으로 해서 성공한 사람은 도전하는 다른 어떤것에도 성공할 수 있는 열정을 끌어 낼 수 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검도를 꾸준히 해야 하는 이유,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는 검도 선수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에 한번 미치듯이 매진할 수 있는 열정을 키워나가는 공부이다.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다보면 누구나가 잘 할 수 있고, 자신감이 생기게되고, 재미가 나는 것이다. 노력없이 저절로 생기는 열정은 쉽게 식지만 노력하며 의도적으로 만든 열정은 어떤 도전도 이룰 있는 힘을 준다.

11) 발전 – 검도를 하면서 수없이 나쁜 자세와 나쁜 마음가짐을 지적 받게되고, 고쳐야 한다.  그렇게 반복되는 과정 속에 자신의 발전이 따른다. 잘 못된 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잘못 된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사범님은 바로 그것을 지적해 주는 것이다. 보통 잘못을 지적 받으면 잘못된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하려는 경우가 많다. 나름 개인적인 이유가 있지만 가르치는 입장에선 못하는 이유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고치겠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개인적인 이유는 개인을 떠나면 변명으로 들리게 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더이상의 발전을 기대 할 수가 없게 된다. 그것은 미래지향적이지 못하고 자신을 과거나 현재에 붙잡아 두는 것이다. 지금의 잘못이 문제가 아니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자신이 문제인 것이다.

12) 특기 – 누군가 인생이 풍요로워 지기 위해 필요한 3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것은 좋은 직업과 취미 그리고 특기라고 한다.  취미와 특기의 차이는 무엇인가? 좋아서 시작한 어떤 것이 아마추어 수준이면 취미이고, 직업으로 바꿀 수도 있을 만큼 프로페셔널 한 경지에 이르면 특기라고 한다. 나는 그래서 검도에 입문을 하면 꼭 4단까지 하라고 권한다. 내 기준은 4단이 바로 취미에서 특기로 넘어가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취미로 느끼는 검도와 특기가 되어 느끼는 검도는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취미가 없는 사람은 취미가 있는 사람을 이해 하지 못하고, 특기가 없는 사람은 특기가 있는 사람의 풍요로움을 이해 하지 못하는 것이다. 취미로 시작한 검도가 특기가 되어 그 깊이와 넓이를 이해하고 삶에 투영되어야 한다.

13) 예지력 – 예지력은 미리 안다는 것이다. 무슨 신통력처럼 불가능하다고 생각될지 모르나 훈련에 의해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 고수는 하수의 수를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검도에서도 하급자의 공격과 움직임을 미리 읽을 수가 있다. 그것은 반복되는 경험, 순간을 놓치지 않는 집중력과 관찰력, 나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등이 모여서 가능해 지는 것이다. 또한 예지력을 높인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본질을 볼 수 있는 제3의 눈을 갖는 것이다.

14) 사물을 보는 눈(觀, 見) – 사물을 보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으로 보는 것이 있다. 눈으로 보는 것은 현재에 국한되지만, 마음으로 보는 것은 예지력과 같이 시간을 초월한다. 눈으로 보는 것은 시야에 들어오는 것만 가능하지만, 마음으로 보는 것은 속에 있는 본질 까지 꿰뚫게 된다. 검도를 하며 눈으로만 보지 말고 마음으로 읽는 것을 수련해야 한다. 기술로 상대를 꺽으려 하지말고 마음으로 상대를 제압해야 하고, 힘과 빠름으로 승부를 내려하지 말고 기와 냉철함으로 맞서야 하며, 승패보다는 이런 수련의 본질에 힘써야 하는 것이다.

15)  – 검도 수련에 있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큰 칼을 쓰라는 것이다. 큰 칼이라함은 큰 동작을 말한다. 큰 동작은 작은 동작보다 느릴 수 밖에 없다. 상대가 작은 동작으로 빠른 공격을 시도 할 때, 나는 그 보다 느린 큰 동작으로 대적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의 의중을 미리 읽고, 미리 대처하여야 하거나, 큰 동작을 더 빠르게 움직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눈으로만 보고 상대의 의중을 읽지 못하고, 빠른 칼 만을 추구하다보면 상대의 속임수에 의외로 잘 넘어간다.또한 큰 동작이라 함은 손목치기 보다는 머리치기처럼 큰 기술을 말한다. 예를 들어, 손목 공격은실패에 따른 위험 부담이 적지만 머리 공격은 내 손목과 허리를 내주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심적부담이 더 할 수 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손목 공격보다 위험 부담이 많을 수 있는 머리 공격을 많이 하라는 이유는 바로 마음 수련에 더 치중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가지 덛붙여 큰 칼을쓰는 중요한 이유중 하나는 호연지기이다. 크고 시원 시원한 칼을 씀으로 해서, 나무를 보고 숲을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큰 칼 큰 마음을 가지란 뜻이다.

16) 절제 – 진검이나 검도의 수련은 절제의 美가 있어야 한다. 바른 자세와 흐트러짐 없는 마음으로 임해야지 상대를 속이고, 변칙적인 방법으로 상대를 이기려 해서는 자기 수련이 될 수가 없다.자기 수련이 되지 않는 연습은 하급단계의 몸놀림에 지나지 않는다. 품위도 없고, 고상하지도 않아깊이와 큰 재미를 주지 않는다. 대화를 할 때, 하고 싶은 말을 나오는데로 다 하는 것 보다는 격식을가지고 품위를 지키며 대화를 하듯이, 검도의 대련 역시 말이 아닌 칼끝의 대화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데로 하는 것이 아니고, 몸과 마음을 절제하여 품위를 지키며 행하여 서로 대화가 통하게 하여야한다. 나는 나를 흐트러트리지 않으려 노력하고, 바르고 큰 칼을 쓰며, 나 자신을 절제하며 수련에 임하는데, 상대는 바른 자세보다는 득점에만 관심이 있다면 대화가 통하는 대련이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17) 지식과 지혜 – 우리는 교육 없인 살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지식을 쌓고, 그것이 이력이 되어 사회 생활을 이어간다. 하지만 충분한 전문적인 지식에도 불구하고 판단을 잘못하여, 또는 조직 사회에 적응을 잘하지 못하여,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쌓아논 지식을 바탕으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판단력과 예지력, 조직 사회에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예절이나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자신을 절제하고 컨트롤할 수 있는 평상심이나 부동심과 같은 위기 관리 능력, 이런 것들은 삶의 중요한 지혜이다. 검도의 수련은 책상에 앉아서 이론에 치우치지 않는, 몸으로 체득하여 마음으로 얻는 지혜교육이기도 하다.

18) 배려 – 상대를 배려한다는 것은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상대를 이해 하기 위해서는 내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결국 자신을 수련하지 않으면 자신을 돌아보지 않게 되고, 상대를 이해하려 하지 않게되고, 고집불통의 자신만을 아는 아집에 사로 잡히게 될 것이다. 아무도 그런 사람을 도와주려 하지 않을 것이고, 항상 자신외에는 적을 만드는 것이 된다. 남을 배려한다는 것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고 자기 자신을 위함이다.

19)  품위 – 어떤 일이든 오랜 시간을 매진하다보면 장인의 정신과 기능을 갖게 된다. 하지만 검도에서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 여긴다. 왜냐하면 검도를 오래하여 기술은 상당한 지경에이르렀다하여도 거기에 묻어 나오는 품위나 인품을 갖추지 못하였다면 그것은 한낱 쟁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칼이라는 것은 하나의 소재이고, 그 칼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나를 되돌아보고, 남을배려하며, 한단계 높은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품위와 품격을 갖춘다는 것은 내 스스로 그것을한단계씩 격상 시키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승부에 집착한 몸놀림에서 한차원 높은 품위 있는 몸짓과 예의바른 언행으로 수련의 질을 높여야 한다. 허스름한 식당에서의 정감도 즐겁지만 때로는 고급식당에서 격식을 차리며 격조있는 대화와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것이다. 총을 사용하는 시대에 칼을 수련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20) 예의– 예시예종이란 말이 있다. 예로 시작해서 예로 끝난다는 뜻이다. 그만큼 예의가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상대에게 예의를 지킨다는 것은 상대에게 나의 이미지를 심어 주는 것이다. 내가 무례해서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고, 그것이 이어져서 나라는 존재가 상대들로 하여금 어떠한 존재로각인되는 것이니, 사회 생활에서 얼만큼 중요한지는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지만, 내가 지금 예의를지키고 있는지, 아니면 예의를 지키지 않아 상대에게 무례하게 비추어 지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많다. 왜냐하면 예를 행함에도 어떤 방법이 있고, 어떤 형식이 있기 때문이다.
오랜 검도 수련으로 유단자가 되고 검도의 깊이를 이해하게 되면 얼마나 사범님이 어려운 존재인지 스스로 알게 되는 시점이 있다. 정말 어렵다고 느껴지는 사람, 도장의 룰 때문이 아니라 최대한의 예를 지켜야 하는 대상이 생기는 것이다. 진정한 예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단지 보이는 것만실행하다가 비로소 예절 바른 사람이 되기 시작 하는 것이다. 회사든 학교든 어떤 조직속에서 든 마찬가지로 최대한의 예를 지켜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리고 모두 예를 행하지만 상대로 하여금 진정 예의바른 사람으로 각인되기는 쉽지 않다. 도장에서 예를 지킨다는 것은 무엇보다 앞서야 할 최우선 과제이다. 실력이 좋은 검도인 보다 예의바른 검도인이 먼저이다.

 

 

얼마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가 호텔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사인은 약물과다복용이라고 한다.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부와 명예를 얻은 세계적으로 성공한 가수가 무엇이 아쉬워 삶을 내려놓을 만큼의 고통을 스스로 주었을까? 그런것을 보면 누구에게나 완벽한 만족과 행복은 없는가보다. 나와 다를 뿐이지 각자의 행복과 각자의 고통을 함께 가지고 가는가 보다. 그래서 난 50:50으로 본다. 누구나 좋은 것 반 나쁜 것 반만큼 공평하게……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어떤 이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고 어떤 이는 더 많이 불행하다고 느기는 것 같다. 정말 더 많이 불행하고 더 많이 안좋은 것 투성일까?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서로 상반된 계산법이 있는 것 같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과거의 좋았던 기억도 나빳던 기억도 있다.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은 과거의 안좋은 기억보다는 좋았던 기억을 더 많이 생각한다. 반대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안좋은 기억을 더 많이 가져오고 괴로워하고 아쉬워한다. 사실 과거라는 것은 좋든 싫든 이미 끝나고 지나버린 것이고 그 기억만 현재에 남아 있는 것일 뿐인데 궂이 끝난 일을 현재까지 버리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힘들어 한다. 거기에 생기지도 않은 미래의 부정적인 생각들을 현재로 가져와 사서 고민을 하기도 한다. 등산을 하다가 비를 만났고 3키로 앞에 냇가를 건너야 하는데 신발을 벗고 건널까 신고 건널까를 3키로 전방에서부터 걱정이다. 냇가에 가서 상황보고 벗든지 신든지 하면 될것을 안달복달을 하며 3키로 전부터 신발을 벗는 것이다. 이렇게 과거에 다 끝난 일들을 현재까지 가져와서 힘들어 하고, 미래의 아직 생기지도 않은 걱정을 현재로 가져와서 불안해 하니 처음에 50:50 공평했던 것을 마이너스쪽만 잔뜩 더해놓아 결국 남들보다 더 불행하다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불행해서 불행한 건지 불행한 생각들만 모아놓아서 불행한 건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거기에 반해 긍정적인 사람은 과거의 좋은 기억은 현재에 더하고 안좋은 기억은 끊어서 빼버리고 미래에 희망과 긍정은 더하고 불안과 부정은 역시 끊어버리니 현재는 항상 긍정만 행복만 많아질 수 밖에 없다.
또 한가지 부정적인 사람과 긍정적인 사람의 차이는 주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사람은 모든 고통의 주체는 내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구때문에 무엇때문에 항상 때문에 내가 이렇다는 생각에 내가 해결 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작아지고 무기력해 진다. 나와 안맞는 누구때문에 힘들어하지 내가 그사람을 받아들일 유연함이 없다는 것은 인정하지 앉는다. 사업이 안되서 돈이 없어서라고 생각도 하는데 돈이 많아도 자살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현재에 행복을 느끼지 못하면 그 문제가 해결되어도 그 미래는 행복해 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행복하지 못한 이유때문이 아니고 행복하지 못할 패턴을 본인이 가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때문에 불편함이 있다해도 행복하지 않을 수는 없다. 주위에 좋은 것도 반은 있고 거기다 과거의 좋은 기억과 미래의 희망과 꿈까지 가져와 반드시 그 끔과 희망을 이룰 수 있고 이루어진다고 믿는다면 긍정은 더해지고 부정은 빼지는데 행복하지 않겠는가? 현재를 행복하게 만들어야 미래도 행복할 수 있다. 내 삶에 내가 주체임을 알아야 더할 것과 뺄 것을 내가 선택해 취할 수 있다. 결국 행복도 내가 만들고 불행도 내가 만든다.

몸주인 마음주인

검도를 시작하는 사람들 모두가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물론 검도의 자세나 동작들이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도 쓰고 생소하기 때문에 더 그럴것이다.
난 지도하면서 이렇게 말을 한다.
“몸의 주인이 아니라서 그러십니다.”
“내몸에 주인이 당연히 나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주인이면 이렇게 말을 안들을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훈련을 통해 몸이 내 말을 좀 따르고 내 생각데로 움직여주라고 매일 매일 몸수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은 이렇게 하고 싶은데 몸은 따라주지 않지만 매일의 몸수련을 통해 차츰 몸이 말을 듣게 되고 마음따로 몸따로에서 마음과 몸의 갭을 줄여나가게 되면 비로소 내몸에 온 주인이 된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몸에 주인이 되었다고 느끼는 시점이 오면 이상하게도 몸보다 그전에 몰랐던 마음이 더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된다. 평상심을 잃게 되고 놀라고 두렵고 망설여지고 의심이 들고……그래서 마음의 주인이 되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데 이 때 몸수련에서 얻은 경험이 큰 힘이 된다. 인간관계에선 때론 속기도 하고 하지만 맞으면 아프고 굶으면 배가 고프고 땀을 흘리면 게운하고 하는 것처럼 내 몸은 절대 나를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그래서 말을 안듣던 내몸이 반복되는 훈련에 의해 주인이 된 것처럼 마음도 훈련을 통해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믿을 수 있고 믿어야 한다.몸으로 시작한 수련이 마음수련으로 옮겨져 내 마음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몸의 주인이 되면 내 몸을 내가 컨트롤 하기 쉬워지듯 마음도 컨트롤 하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평상심을 찾고 놀람 두려움을 극복하고 결단력과 담력이 배양될 것이고 더나아가 부정적이고 불필요한 생각들을 긍정적이고 유용한 생각들로 바꿀 수 있는 마음 부리기가 용이해진다는 의미이다.
몸을 컨트롤 하듯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는 진정한 나의 주인이 되는 것, 이것은 행복한 일이 있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내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주인된 마음인 것이다.

생각 바꾸기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다 보면 무의식 중에 자신을 틀에 가두는 버릇이 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나는 원래 이러이러해서 절대 이러 이런 것 못해” “나는 절대 이건 못 먹어” “나는 어릴 때 물에 빠진 적이 있어서 물을 싫어해” “나는…… 나는…… 나는……” 마치 만고불변의 진리라도 되는 것처럼 틀에 가두고 다른 얘기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 정도가 심하면 대화도 재미없어지고, 듣는 사람도 갑갑하고 답답함을 느낀다.
왕년에 물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은 어디 있으며, 싫어하는 음식 없는 사람은 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물에 빠진 건 과거에 끝난 일이고, 오히려 그런 일이 있어서 수영을 배웠고, 그러다 보니 물이 좋아졌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고, 음식 싫어서 안 먹는 것과 못 먹는 것도 결과는 같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큰 차이가 있다. 먹을 수는 있지만, 먹고 안 먹고의 선택을 갖는 것과 어떠한 이유든 절대 못 먹는다고 생각해서 선택의 여지마저 없애버리는 것은 단지 먹는 얘기로 끝날 얘기가 아니다.
검도를 배울 때도 나는 원래 체력이 안 좋아서…… 나는 원래 동작이 느려서…… 나는 원래 운동신경이 없어서…… 처음부터 체력 좋고, 빠르고, 운동신경 좋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그렇게 자기 틀에 가둬놓고 결론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 더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운동을 배우는 중요한 이유는 단순한 건강이나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뿐 만이 아니고, 그 생각의 틀을 깨고, 하면 된다는 소중한 경험을 얻는 것도 있다.
어쩌면 생각바꾸기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울 수도 있겠고,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일 수도 있다.
원효대사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로 가르침을 주었고, 불교에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는 말이 있다. 서양에서는 양자역학(양자물리학)으로 쉬운 것을 어렵게(?) 말하고 있다.
나는 쉽게 이렇게 말한다.
‘Never say never!’

짜장면 먹는 방법

돈이 없는데 짜장면이 먹고 싶다. 누군가 사주면 땡큐지만 내 돈 아니니 내가 결정할 수도 없다. 양반(?)체면에 굶더라도 사람에 도리를 잃을 수 없다고 나름 거창한 이유를 대고 손가락을 빤다.
주위에 짜장면 먹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 세상이 야속하다.

돈이 없는데 짜장면이 먹고 싶다.
내일 먹기로 결정을 한다. 내일 맛있게 먹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 잔다.
먹은거나 마찬가지다. 마음은 부자다라고 안위를 하며 라면을 깨먹는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지 잘못하다간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굳게 믿는다.

돈이 없는데 짜장면이 먹고 싶다.
내일 먹기로 결정을 한다. 내일 맛있게 먹는 상상을 한다.
주위에 사줄만한 사람을 찍는다. 찾아가서 그 사람이 내게 점심을 사주고 싶도록 만든다. 그리고…말한다.
“전 짜장면 먹고 싶은데요”
그리고 생각한다.
‘내일 뭐 먹을까?’

내 미래는 내가 만드는 것.

세명의 하인

  사람이 태어날 때 누구나 세명의 하인을 데리고 온다.
첫 째 하인은 내 몸이고, 둘 째와 셋 째는 쌍둥이인데 정신이다. 이 셋은 주로 함께 일하지 않고, 둘이 자면 하나가 일을 한다. 특히 둘째와 세째는 활동영역도 달라서 마주치는 일도 거의없다. 둘 째는 뇌의 생각하고 의식하는 모든 의식의  5%안에서 일을 하고, 세째는 무의식 잠재의식이라는 95% 안에서 일을 한다. 그래서 둘 째가 일을 잘하면 공부도 잘하고 똑똑하단 소리를 많이 듣게된다.
문제는 그러다 그 틀에 갇혀서 셋 째를 안믿고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려 든다. 일기예보는 믿어도 내 육감은 믿질 못한다. 일기예보 모르는 동물들은 피하는데 그건 동물이라 그렇다고 닫아버린다.
아는 것만큼 보이고 보이는 것만큼 생각하게 된다.

  셋째의 무의식이란 영역은 다른 차원의 얘기이다. 그래서 3차원의 둘 째는 아무리 설명을 해도 3차원의 경험과 지식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가 없다.
큰 고민이 생겼을 때 아무리 머리를 써도 해결책이 나오질 않아 괴로워한다. 아무리 답을 찾아도 100개중 5개밖에 답이 나오지 않는데, 무늬만 봐꿔서 5개를 돌리고 돌리니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한마디로 둘 째의 일이 아니다. 그럴땐 그냥 셋 째를 믿고, 첫 째와 둘 째를 재우면 된다. 첫 째와 둘 째가 쉬면 셋 째가 일어나서, 첫째와 둘 째가 보지도, 듣지도, 생각지도 못한 답을 95개나 가지고 온다.
혜민스님이란 분이 멈추면 보인다는 말을 했는데 둘 째를 재우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검도를 하면 처음엔 누구나 첫 째로 이기려고 한다. 빠르게와 강하게에 치중한다. 태권도와 검도가 싸우면 누가 이겨요? 첫 째끼리만 싸우면 빠르고 강한 사람이 이긴다.
조금 단계가 올라가면 첫 째를 재우고 둘 째를 내세우게 된다. 힘빼고 집중해서 상대의 움직임을 읽는다. 조금 낫지만 고수를 만나면 도무지 보이지를 않는다. 답이없다. 이럴때 힘빼고, 때리고 맞는거에 연연하지 말고, 눈으로만 보지말고, 먼산 바라보듯 보라고 하는데, 한마디로 내려놓으란 말이다. 이것 역시 첫 째 둘째를 재우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다. 상대의 겉이 아닌 속이 보이고, 의중을 미리 알게되어 준비를 하게된다. 미리본다는 것은 미래를 본다는 것인데, 3차원으로보면 불가능하지만, 결국 과거 현재 미래의 순서가 없어지는 다른 차원의 얘기이고 셋 째의 영역이다.

  여기까지 말을 하면, 말은 쉬운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나이가 들어서 몸이 예전같지 않다고도 생각하는데, 아직 몸 훈련이 안되었거나, 훈련을 했다고 해도 건강이나 몸 자체만을 위한 훈련을 해서 젊어서는 첫 째끼리의 싸움에 이겼던 것 뿐이다.
몸에 나이가 든 것보다는 생각이 고정되고 좁아지며  셋 째를 잊어가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몸이 나이가 들수록 첫 째 둘 째를 재워서,  셋 째를 일으켜야 하는데,
첫째도 둘째도 말을 듣지 않으니 몸도 힘을 빼라고 해도 안빼고, 마음도 자라고해도 안자고, 생각을 좀 멈추라고, 욕심을 좀 버리라고 해도 통 말을 듣지 않는다. 멈추고 싶은데 계속 고민하고, 몸까지 축내고, 이젠 누가 주인이고 하인인지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그나마 좀 쉬운 몸도 훈련시키고, 마음도 훈련을 시키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셋 째를 깨워서 일도 시키고, 원래 주인이 누군지도 가르치고, 주인게 통제를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 주인됨을 잃으면 돈이란 녀석도  그렇고 세상적인 모든녀석들이 내 위로 올라가 나를 노예처럼 부리려 한 다. 세상의 자로 사람의 높낮이를 재려하고, 또 같은 자로 스스로를 재며  기가 죽어 살기도 한다. 사람은 그러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주인으로 태어난 것이다.
태권도가 쎄요 검도가 쎄요? 첫 째가 싸울지 셋 째가 싸울지 답이 다른 것처럼 돈 많은게 좋아요 학벌 좋고 지위 높은게 좋아요? 하고 물어보면 말잘듣는 하인 있는 사람이 좋다고 대답하면 된다. 그안에 세상이 있고 미래가 있고 사람다움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