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 혜 정
몇년에 걸쳐 나를 끈질기게 쫓아다닌 검도에 입문한지도 어느덧 2년이 다 되어간다. 열심을 냈다기
보다, 단지, 중도하차를 하거나 게으름을 피워 맥을 끊지는 말자는 각오로 임한 시간들이었다. 검도를
통해 내 인생의 새 막이 열리겠구나 하는 막연하지만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지난 40년과는 또 다른 형
태의 새로운 경험을 하게될 것 이라는 것도 예감했다. 지난 2년은 그런 의미에서 나의 삶의 지경을 넓혀
나가는 감사한 시간이었다.
검도가 단순한 운동이 아님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죽도를 잡는 시간은 나에게 기대, 기쁨, 실망 그리고
부담등을 꾸준히 안겨주고 있다. 우리들의 삶이 그러하듯. 나를 비롯해 주변 관원들의 검도 하는 모습
을 보고 있노라면 어쩌면 이리도 우리들의 평소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장은 우리네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내가 알고 있는 너와 나의 장점, 단
점, 그리고 도저히 어쩔수 없는 한계등.. 잠시 대련을 하고 있다 보면 상대방의 기질과 속마음이 적나라
하게 드러난다. 쉽사리 적응이 안되는 부분은 나의 모습이 나 자신에게 그리고 상대방에게 영락없이 드
러난다는 점이다. 너무나도 괴로운 순간이다. 그 순간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에 검도가 부담으로 다가온
것도 사실이다. 도장 밖에서의 나의 습관과 틀이 죽도를 쥐고있는 동안 고스란히 재현되고, 꼼작없이 무
기력해진다.
성경 한 자락에 이러한 구절이 있다. ” 너의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
로다..” 어느 유단자가 나의 검도 하는 모습을 보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상대방을 보고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백기를 들어서 상대방의 머리치기가 힘겨운 것이다… “. “그 문제는 더미를
상대로 매일 머리치기를 500 번씩 하면 풀리기 시작할 것이다” 라고. 언뜻, 매우 당연하고 단순한 사실
인듯 하지만 이 말에 중요한 진리가 담겨 있음을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된다. 검도를 하면서 우리는
스파링 상대와 마주 하는 것이 아닌 우리 자신과 독대 한다. 얼마나 스스로와의 싸움이 대단하면 성경
에서 “대적” 이라는 표현이 사용 됐을까 싶다. 유일무이한 최대의 적이리라… 감사하고, 놀랍게도, 검도
는 나에게 가장 커다란 과제를 안겨주었고 동시에 그 해결책까지 제시해주고있다. 나는 지난 40년 동안
나름대로의 집중적인 기도생활을 통해 모든 상황과 과제에 접근해갔다. 그리고 결국 그러한 정신적(영
적) 행위로 적지않은 열매들을 목격했다. 기적을 목격했다. 마음으로 마음도 움직이고 몸도 움직이고
상황도 움직인 셈이다. 검도를 처음 접한 순간 생소한 나머지 당황하고 정체되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결
국 같은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는 몸 수련을 통해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주관하고 더 나아가
상황마저 움직이는 다음 장에 들어선 것이다. 새 경지를 바라보게 된다. 이미 시작 되었고, 기대가 된다.
종국에는 나의 대적이 나에게 “복종” 하게 될 것 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우리 모두 방법과 때의 면
에서는 차이가 있겠지만, 결국은 한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대목이다. 우리 모두 한
번의 삶을 살던, 아님 혹자가 얘기하듯 여러번의 삶을 살게되던, 예외없이 자신을 직시하는 상황에 놓이
게 되고, 그 상황을 은혜롭게 뛰어넘는 것을 경험하면서, 절망스럽도록 뿌리 깊은 결박에서 헤어나 진정
한 자유를 경험하게 되는 과정을 밟는 것은 동일하리라 믿는다. 나의 경우는 다만 그 과정을, 적어도 지
금은, 도장에서 이뤄나가게 된 것이고, 이는 분명 큰 은혜이고 축복이다.
몇년에 걸쳐 나를 끈질기게 쫓아다닌 검도에 입문한지도 어느덧 2년이 다 되어간다. 열심을 냈다기보다, 단지, 중도하차를 하거나 게으름을 피워 맥을 끊지는 말자는 각오로 임한 시간들이었다. 검도를통해 내 인생의 새 막이 열리겠구나 하는 막연하지만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지난 40년과는 또 다른 형태의 새로운 경험을 하게될 것 이라는 것도 예감했다. 지난 2년은 그런 의미에서 나의 삶의 지경을 넓혀나가는 감사한 시간이었다.검도가 단순한 운동이 아님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죽도를 잡는 시간은 나에게 기대, 기쁨, 실망 그리고부담등을 꾸준히 안겨주고 있다. 우리들의 삶이 그러하듯. 나를 비롯해 주변 관원들의 검도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쩌면 이리도 우리들의 평소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그런 의미에서 도장은 우리네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내가 알고 있는 너와 나의 장점, 단점, 그리고 도저히 어쩔수 없는 한계등.. 잠시 대련을 하고 있다 보면 상대방의 기질과 속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쉽사리 적응이 안되는 부분은 나의 모습이 나 자신에게 그리고 상대방에게 영락없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너무나도 괴로운 순간이다. 그 순간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에 검도가 부담으로 다가온것도 사실이다. 도장 밖에서의 나의 습관과 틀이 죽도를 쥐고있는 동안 고스란히 재현되고, 꼼작없이 무기력해진다.성경 한 자락에 이러한 구절이 있다. ” 너의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어느 유단자가 나의 검도 하는 모습을 보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상대방을 보고 위축되는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백기를 들어서 상대방의 머리치기가 힘겨운 것이다… “. “그 문제는 더미를상대로 매일 머리치기를 500 번씩 하면 풀리기 시작할 것이다” 라고. 언뜻, 매우 당연하고 단순한 사실인듯 하지만 이 말에 중요한 진리가 담겨 있음을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된다. 검도를 하면서 우리는스파링 상대와 마주 하는 것이 아닌 우리 자신과 독대 한다. 얼마나 스스로와의 싸움이 대단하면 성경에서 “대적” 이라는 표현이 사용 됐을까 싶다. 유일무이한 최대의 적이리라… 감사하고, 놀랍게도, 검도는 나에게 가장 커다란 과제를 안겨주었고 동시에 그 해결책까지 제시해주고있다. 나는 지난 40년 동안나름대로의 집중적인 기도생활을 통해 모든 상황과 과제에 접근해갔다. 그리고 결국 그러한 정신적(영적) 행위로 적지않은 열매들을 목격했다. 기적을 목격했다. 마음으로 마음도 움직이고 몸도 움직이고상황도 움직인 셈이다. 검도를 처음 접한 순간 생소한 나머지 당황하고 정체되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는 몸 수련을 통해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주관하고 더 나아가상황마저 움직이는 다음 장에 들어선 것이다. 새 경지를 바라보게 된다. 이미 시작 되었고, 기대가 된다.종국에는 나의 대적이 나에게 “복종” 하게 될 것 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우리 모두 방법과 때의 면에서는 차이가 있겠지만, 결국은 한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대목이다. 우리 모두 한번의 삶을 살던, 아님 혹자가 얘기하듯 여러번의 삶을 살게되던, 예외없이 자신을 직시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고, 그 상황을 은혜롭게 뛰어넘는 것을 경험하면서, 절망스럽도록 뿌리 깊은 결박에서 헤어나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게 되는 과정을 밟는 것은 동일하리라 믿는다. 나의 경우는 다만 그 과정을, 적어도 지금은, 도장에서 이뤄나가게 된 것이고, 이는 분명 큰 은혜이고 축복이다.